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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성석제가 들려주는 태어나고 그렇게 살다가 투명인간처럼 사라져간 한 남자의 이야기
주인공 만수는 우직하고 성실하고 더없이 선량한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김만수를 중심으로 사건이 그 주변 인물들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만수의 일생을 말하고 있지만 각 사건마다 서술자가 다르기 때문에 많은 사건들이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된다. 한가지 사건에 대해서도 여러 관점을 생각하게 되어 상당히 좋았던 부분이었다.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 사회의 분위기나 느낌에 대해서 어찌나 생생하게 전달되는지 소설을 읽는 동안 신기할 정도록 그 시대에 푹 빠질수있어 작가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먹먹해져 오는 마음을 다잡는 나에게 작가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현실의 쓰나미는 소설이 세상을 향해 세워둔 둑을 너무도 쉽게 넘어들어왔다. 아니, 그 둑이 원래 그렇게 낮고 허술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 이후 깨달은 것은 이것뿐이다."
소설의 후반부를 집필할때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작가의 말의 의미가 남다르게 들려온다.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라는 말.
이 소설은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해피엔딩이라고 할수도 없을 뿐더러 주인공 만수의 일생은 너무나 힘들고 고달프고 주변의 인물들은 만수와 비교하면
하나같이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속물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만수는 밝고 긍정적으로 자기앞에 닥쳐오는 상황들을 묵묵하게 해결해 나간다.
그것을 해결해 나간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만수의 모습을 보며 독자는 자연스럽게 만수를 응원하게 되지만
만수를 보는 주변인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만수는 천성이 착한 사람이다. 시골에 살땐 소였고 서울에 오고 나서는 쉴새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부품처럼 열심히, 묵묵하게 일했다.
그것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하지만 동생 석수와 옥희는 너무나 그것을 당연시 여기고 감사하기는 커녕 만수를 무시하고 더 받지 못함을 원망한다.
만수의 천성을 알아본것은 할아버지와 큰누나 정도 뿐.. 그러나 그들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별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인생에 도움이나 위안을 줄수 있는 존재는 되지 못한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만수의 일생을 따라 당시 사회 분위기나 풍토를 보여주는 한국 근대사의 몇가지 사건도 따라 등장하는데
큰형 백수를 죽음으로 이끈 월남파병의 고엽제 문제가 있고
유신정권 하의 군대 생활(탈영병의 총에 맞아 제대하는 등)과 전경생활을 하며 받아 챙긴 돈으로 전셋집을 마련하기도 하며
총명하고 예쁘던 작은 누나는 연탄가스를 마시고 백치가되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만수의 일생을 통해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의 생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누군가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비극이다.
지금도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니 읽는 동안에도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 소설은 끝까지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만수가 끝까지 행복해지지도 않을 뿐더러
사실 어떻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투명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투명인간이 되어 다행인 것인가?
그만큼 그의 일생이 너무나 고달프다.
하지만 끝까지 만수는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만수의 마음 속에서는 그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이 고향 산골에서 밥짓고 농사짓고 소를 닭을 키우며 환하게 웃고있다.
이 소설이 50대의 베이비 붐 시대의 이들에게 바치는 엘레지라면 너무나 애잔한 노래가 아닐까 싶다.
-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가. 죽는게 낫겠다.
( 중략)
-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는건 절대 쉽지 않다. 사는게 훨씬 쉽다. 나는 한번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중략)
보고싶은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기 다 있다. 보인다. 지금같은 순간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내가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기쁨이 내 영혼을 가득 채우며 차오른다. 모든것을 함께 나누는 느낌,
개인의 벽을 넘어 존재가 뒤섞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다를수 있을 거 같다. 이게 진짜 나다.
강력추천하는 소설, 성석제의 투명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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