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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 김성미 옮김

북 플라자  2015


"그들은 지금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당신이 한 약속을 지키세요!"


버려버린 과거 속에 묻어버린 15년 전 어떤 약속


무카이는 도쿄의 가와고에라는 곳에서 14년째 HEATH라는 BAR를 운영하고 있는 바텐더이다.

무카이 에게는 부인 가오루와의 사이에 호노카라는 초등학교 3학년인 예쁜 딸이 있다. 

이렇듯 평범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는 듯 보이는 무카이 에게는 사실 부인과 딸에게도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다.


무카이의 본명은 사실 다카토 후미야.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의 반을 뒤덮고 있는 흉측한 멍 때문에 부모에게도 버림받고

보육시설에 맡겨져 자란 그는 학교에서도, 보육시설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경멸의 대상이 된다.

그 결과 폭력을 유일한 무기로 생활하게 된 그는 절도죄와 상해죄를 반복하여 소년원을 들락거리고

끝내는 야쿠자들이 하는 사기도박에 말려들어 큰 빚마저 떠안게 된다.


이런 인생..차라리 죽는것이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구름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때

한 노파가 말을 건다. 

"괜찮으면, 저희 집에 오시지 않겠어요? 마침 지금부터 돌아가서 저녁 준비를 할 참이에요."


노파의 이름은 사카모토 노부코, 남편을 일찍이 교통사고로 잃고 딸 유키코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던 그녀는

유키코가 17세이던 어느날 딸마저 흉악범들의 소행에 의해 잔읺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하고 만다.

그 이후로 그들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녀는 시한부 암 선고를 받고

원통함을 풀길 없던 차에 갈곳 없는 무카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노부코의 집에서 무카이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제안을 받는다.

두사람을 죽여줘요...

딸 노부코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그 두 남자를 죽이면 인생을 바꿀수 있게 성형수술을 하고 호적을 새로 만들

비용을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노부코는 이미 말기 암이었고 그 두사람은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언젠가는 출소하게 될 터였다.

사람을 죽여달라는 말에 아무리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어두운 세계에서 살던 무카이도 망설였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자기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노부코가 죽은 뒤에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무카이는 약속을 하게 되고, 노부코에게 받은 돈으로 얼굴을 바꾸고 이름을 바꾸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운이 따랐는지 오치아이라는 동업자도 만나 BAR를 공동 운영하게 되었다. 

모든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 했다.....


그런데 평화롭던 어느날..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든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사카모토 노부코는 죽었다.. 도대체 누가 보낸 편지일까...

두려움과 궁금증으로 하루하루 보내던 무카이에게 두번째 편지가 배달된다.

"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에게도 나와 똑같은 재앙이 덮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세번째 편지...

그 편지에는 세장의 사진.. 담배를 피며 파친코를 하고 있는 사내와 술을 마시는 또 다른 사내.. 그리고...

딸 호노카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더이상 시간을 끌수 없게 된 무카이.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 돌이킬수 없는 약속(일본 제목은 誓約) 은 수많은 복선이 깔려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61년 일본 효고현 출신으로 51회 에드가와 란포 상을 비롯, 요시카와에이지문학신인상 등 각종 굵직굵직한

상들에 노미네이트 되는 일본 추리소설의 대표작가중 하나이다.


일본판의 표지. 2015년 발행되었다. 


다른작품은 아직 읽어본적 없지만, 이 작품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글쎄.. 그렇게 까지 흡입력이 있다거나 복선과 

설정이 뛰어나다는 느낌은 받을수가 없었다.

재미가 없는것은 아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긴 하였지만 읽는 중간중간에 지루한 부분이 군데군데 있어서

읽다가 결말을 먼저 보고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범인이 중간부터는 전화로 지시하고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범인을 찾아 나서는데 주인공의 트릭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채 끌려다니기만 하는 범인의 모습은 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의 소설은 막장을 덮을때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은 약간 아쉬운 느낌이 많이 들었다. 

결말은 차라리 괜찮았지만  스토리 진행면에서 조금 더 긴장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트릭을 완성시키기 위한 노숙자자 아저씨라던지.. 중간에 쓸데없는 인물이 개입되고

너무 내용이 늘어지는 반면에 마지막 챕터에서 결말을 내기위해 전력질주 하는 느낌이랄까..

기대를 많이 하고 보아서인지 아쉬웠지만 사회문제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것이 특기인 작가라고 하니 

다른 작품은 어떤 식으로 써내려 가는지 읽어 보고는 싶은 작가이다.





































거울 속 외딴성(鏡の孤城)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 서혜영 옮김

2018.08.31 알에이치코리아










'아마존 재팬 베스트 셀러 종합 1위'

'다빈치 book of the year 1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8위'

'2018 서점 대상 수상작!'

'일본 추리작가협회 노미네이트'



출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과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아침이 온다'의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의 신작 판타지 미스테리 소설이다.

일본에는 벌써 팬들이 꽤 두텁게 형성된 작품으로 등장인물들의 일러스트들도 검색창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코로의 거울 속 방



늑대가면을 쓴 소녀..그녀의 정체는?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왼쪽부터 우레시노, 마사무네, 리온, 고코로, 스바루, 후카, 아키..그리고 늑대소녀



<줄거리 스포주의>


중학교1학년 고코로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학교를 쉬고있다. 대안학교를 나가기로 하고 있지만 그것도 아직까지는 두려운 마음이 크다.

소설은 첫부분부터 따돌림을 당하여 집에 숨은 소녀와 그 엄마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기의 어린 딸이 따돌림에 의해 학교를 그만두어야만 했던 

상황에 놓인 엄마와 그 중심에 있는 소녀의 심리가 생생하게 표현되고, 독자들은 동정과 연민으로 주인공을 바라보게 된다. 무료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

던 고코로는 방 한구석의 전신거울이 빛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으로 빨려들어간다. 거울 속 세계에는 늑대가면을 쓴 소녀와 동화속에나 나오것 같

은 성이 있고 고코로는 두려움에 소원을 한가지 이루어 주겠다는 소녀의 말을 뒤로한채 다시 자기 방으로 도망치지만, 다음날 다시 거울속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일곱명의 아이들이 있고 그중 열쇠를 찾는 한명만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늑대소녀는 말한다.

등장인물 각각의 에피소드가 소설 말미에 필연적인 사건으로 인해서 밝혀지고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밝혀진다.

마지막까지 모든 비밀을 밝히지 않고 끌고가는 소설의 스토리가 긴장감을 놓칠수 없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것은 피해자인 어린 소녀의 시선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학교 폭력이라는 상황에 노출되어있는 주인공이 어떤 마음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지에 대한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모든 사건의 실타래가 마지막에 풀리는 점이나 시간의 차이를 두고 주인공 간의 연관성을

풀어내는 점, 등장 인물들이 각각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떠올리게 한다.

10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빨간모자','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등의 동화를 모티브로 한것도 

소녀의 감성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신선하고 잘 어울리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동화적인 판타지 미스테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대추천!


<본문 중에서>

고코로는 주위에서 술렁이는 시선을 받아내면서 느릿느릿 집에 갈 준비를 하다가 '톨이'는 외톨이라는 말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외톨이를 톨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말을 몇번이고 머릿속으로 되뇌이면서 아무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 동아리를 가본다 한들 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알아보고 다닐 기분이 들지 않았다.

'어쩌다가 내가 저 애들에게 찍히게 된걸까.'

무시당한다.

험담을 듣는다.

다른 아이에게 "고코로랑은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편이 좋아."라고 귀에 들리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다.

웃는다.

웃는다웃는다웃는다.

고코로를 비웃는다.   -p 30-













소설을 읽고 나서 보면 의미 심장한 그림이다


예를들어.....

예를 들어 꿈을 꿀 때가 있다.

전학생이 다가온다.

그 아이는 많은 반 아이들 중에 내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그 얼굴에 해님같이 눈부시고 다정한 웃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안녕."

그가 고코로를 향해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살인의 문 (殺人の門)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재인 / 2018.8.31





일본 미스테리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 나왔다. 


살인의 문 (殺人の門)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로써는 드물게 1,2권으로 되어있는데, 일본에서는 2006년에 발간되었던 작품이지만 


여지껏 한국에는 선보인적이 없었는데,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이 대 히트를 치고 나날이 작가의 인기가 높아져 감에 따라 이번에 국내에도 출간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 圭吾 일본의 소설가


1958.02.04 오사카 출생. 오사카 부립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 '방과 후'로 데뷔하였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고 영향력 있는 소설가중 하나인 그는 대학 졸업 후 자동차 부품회사인 '덴소'에 취직하였으며 

이때의 경험을 살려 작품 '비밀' 에서는 주인공이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근무하는 등 자신의 실제 배경과 경험을 다양한 작품에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들면 여러작품의 배경으로 자신의 고향인 오사카를 선택하기도 하고 이공계가 아니면 모를 전문 지식들이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추리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사회 문제가 녹아들어가 있고 그래서 그의 작품은 특히 독자들이 감정을 이입하기에 좋은 작품이 많이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여지없이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이지만 살인의 트릭이나 미스터리를 푸는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인물의 행동 배경이나 감정선에 관한 치밀한 설정이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자아내고  책장을 덮으며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타고난 스토리 텔러이다.

다작을 하는것으로 유명하여 일부 안티팬들에게는 (안티팬이 있을 정도로 팬층이 두텁고 유명한 작가이다!) 다작을 하는것 때문에 전체적인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 봤을때 그처럼 다작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작가는 많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 처럼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정통 미스터리보다는 감성판타지 소설에 가까운 작품을 내기도 하는 등 미스터리같지 않은 

미스터리 작품도 많은 편으로, 특히 그는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행동 배경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여자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단편 소설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고,(연애의 행방 같은..) 널리 알려진 작품들인 백야행, 비밀,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 용의자 X의 헌신 등은 누가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재미있는 작품들이다. 많은 작품들이 TV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졌고 미국의 스티븐 킹 처럼 배우보다도 그의 이름을 작품 홍보에 사용하기도 하는 등 유명한 인물이다.


'부지런한 천재'라는 명성에 걸맞게 매 분기별로 신작을 출간해 내고 있으며 

집필하는 작품마다 생생한 인물 묘사와 흡입력있는 스토리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일본의 대표 미스터리 작가이다.














일본에서 출간된 '살인의 문'의 표지.

정가 ¥ 907 


책이든 뭐든 대중교통비를 제외하고는 이젠 우리나라가 전반적으로 일본보다 물가가 비싼듯 하다



★★★★★ 궁극의 패러디. ‘죽여 버리고 싶다’는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리얼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 가슴을 한 손으로 누르고 가끔 심호흡을 하면서 읽어야 했다.

★★★★★ ‘남의 불행은 재미있다’라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일까, 한없이 빠져든다.

★★★★★ 냉소적인 블랙 코미디. 나는 이 어둠이 좋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은 현대 문학의 최고봉이다.

★★★★★ 멋지게 걸려들었다. 굉장한 것을 읽어 버렸구나, 하는 느낌.

★★★★★ 읽게 만드는 테크닉이 대단하다. 이런 것, 더 써 주시지 않겠습니까?

★★★★★ 최고의 작품. 숨 막히는 전개에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생각했다.

- 일본 아마존 독자 서평 중에서


“그놈을 죽이고 싶다”

악의 화신인 한 남자, 그리고 일생을 그에게 농락당하는 또 한 남자.
두 남자의 끈질긴 악연이 빚어내는 ‘증오’와 ‘살의’에 관한 일대 서사시



이것은 유복한 치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다지마 가즈유키와 가난한 두부 가게 아들 구라모치 오사무의 지독한 악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년의 불행의 시작은 어느날 날아든 불행의 편지와 함께였다. 계속해서 날아든 23통의 편지.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마음속 한켠에 기분나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그 편지들은 다지마 가즈유키의 이름을 田島和가 아니라 田島和로 잘못 써서 보내고 있었는데, 전학가던 날 사인북에 구라무치 오사무가 쓴 글을 보고 가즈유키는 자신에게 그간 편지를 보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린다. 이후로도 소년의 인생은 점점 꼬여만 가고,..


가즈유키가 죽음을 처음 접한 것은 같이 살던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할머니에 대한 애정은 전혀 없으면서도 용돈을 받기 위해 매일같이 할머니의 방에 드나들던 

가즈유키는 어느날 할머니가 자는 채로 죽은 모습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고, 오사무의 꼬드김에 사기도박을 당하고 있던 가즈유키는 돈이 절실히 필요했기에

할머니의 죽음을 어른들에게 알리기는 커녕 할머니의 손에 있던 지갑에서 돈을 빼내어 달아난다. 가즈유키의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않던 할머니의 죽음은 가즈유키의 어머니가 할머니를 독살시켰다-라는 이상한 소문을 남기고, 그 터무니 없는 소문 때문에 부모님의 관계도, 아버지가 경영하던 치과도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 후에 가즈유키는 아버지 곁에 남기로 결심하지만, 어머니의 부재로 마음이 붕뜬 아버지는 긴자의 호스티스에게 빠져 재산을 탕진하게 되고

그 여자의 애인에게 습격당하여 오른손마저 못쓰는 지경이 되어버린다. 치과를 운영할 수 없게 되자 아버지는 술에 의지하여 하루하루를 보내고 새로 전학간 학교

에서 가즈유키는 심한 이지메를 당하게 된다.


괴롭힘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매일같이 학교에 갔을까. 뚜렷한 이유는 없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딱히 이유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아프지 않으면 학교에 가야한다는 사고방식이 내 발을 학교로 향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등교 거부'라는 말이 조금 더 빨리 알려졌다면 나도 그 방법을 택했을지 모른다. 다만 내가 고통을 견디기 위해 의지하는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어디, 맘대로 해봐. 여차하면 다 죽여 버릴 테니까.'

살인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 아닐까 싶다. 나는 매일 살인을 상상했다.     -p122-


가즈유키는 처음으로 살의를 느끼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첫번째 목표로 정한것은 구라모치. 몇일째 구라모치의 뒤를 밟고 독이든 붕어빵을 준비하여 구라모치와 대면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의 화술에 말려들어 계획을 접는다. 

구라모치는 타고난 사기꾼이다. 눈치가 빠르고 악랄하며 타인의 마음 같은건 안중에도 없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느낌이다. 가즈유키는 그것을 알면서도 번번히 속아 넘어가고 만다. 

이것이 이 작품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끝없는 어둠으로 추락하는 주인공, 독자들은 그것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또 반복해서 덫에 걸려들고... 작가가 창조해 낸 이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세계야 말로 이 작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고뇌하는 다지마 앞에 수수께끼의 한 인물이 나타나고, 그는 다지마와 구라모치의 악연에 관한 놀라운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놈을 죽이고 싶다. 그놈 때문에 내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다. 하지만 죽일 수 없다. 살인자가 되기에 내게 부족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살의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려면 대체 무엇이 필요한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살인의 문』(전 2권)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에게 철저히 인생을 농락당해 온 한 남자의 처절한 자기고백이다. 또한 서서히 침몰해가는 주인공이 불타는 복수심과 살인 충동을 증폭시키는 심리적 과정을 주인공 일인칭 시점의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문제작이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묘사해 온 작가 특유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부도덕한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갖가지 모습과 심리를 파헤친 사회심리 소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돈을 번다는 것은 그런 거야. 누군가에서 돈을 합법적으로 빼앗는 거지. 합법적이기만 하면 더럽고 깨끗하고가 없어.”


"네가 바라던 일이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오늘까지 이렇게 살아온 건 네가 그토록 혐오하는 회사 덕분이야. 조금이나마 저축할 수 있었던것도

그 악랄한 사업에 손을 댔기 때문이고. 다른 누가 도와줬어? 네가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이미 네 몸에는 그 악랄한 회사의 독이 퍼져 있어. 

하지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사회란 그런 거니까."


소설 속 구라모치의 대사이다. 구라모치가 하는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자기의 비열한 수단을 언제나 정당화 시키고 교묘하게 법의 테두리를 빠져나간다.

다지마는 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실은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인가.. 보다 보면 헷갈릴 지경이다.


연금 생활자 노인들을 노린 금 판매 사기, 주식 투자 컨설팅 사기 등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범죄 수법은 1980년대 거품 경제 시기의 일본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로, 소설에 사실감을 더해 주는 동시에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특유의 비정하고 베일에 싸인 암흑세계 묘사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번번히 구라모치에게 농락당하고, 그때마다 그를 죽이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는 다지마. 하지만 또 다시 그의 현란한 화술에 속아 넘어가고, 구라모치의 배신과 악행은 점점 도를 넘어 극한을 치닫는다. 급기야 다지마는 구라모치의 치밀한 연출에 속아 사기 결혼까지 하게 된다. 결혼에서 이혼에 이르는 전 과정이 그를 파멸시키기 위한 구라모치의 사전 계획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면서 다지마는 마침내 살인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우유부단한 다지마는 결국 구라모치를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놓칠 위기에 처한다. 


‘나는 왜 그를 죽이지 못하는가,’


고뇌하는 다지마 앞에 수수께끼의 한 인물이 나타나고, 소설은 여기서 대반전이 일어난다. 그 남자는 어린 시절 다지마가 사기도박으로 돈을 잃었을 때 구라모치와 공모했던 사기꾼으로, 그동안 불가사의하기만 했던 다지마의 인생 행로를 설명해 줄 비밀을 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제 이야기는 다지마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할머니의 죽음과 어머니의 독살 소문으로 시작된 집안의 몰락, 그 이후의 잇따른 불행, 이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소설은 외견상 다지마를 일방적인 피해자로, 구라모치를 악의 화신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함께 있으면 끊임없이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또는 “악행을 보면서도 손 놓고 있기 때문에” 다지마는 구라모치에게 번번이 속고 계속해서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어 가면서 구라모치가 나타날 때마다 불길한 생각을 떠올리고, 그 나쁜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해 참혹한 결과로 귀결된다. “가즈유키, 제발 정신 차려”라고 응원하지만, ‘인간다운’ 주인공에게 매번 배신당하면서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독자들이 좀처럼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살인의 문』이 ‘사회파 작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부조리한 사회 속에 놓인 갖가지 인간 군상의 심리와 프로세스를 소름 끼치도록 리얼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을 유감없이 드러냄과 동시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독자를 한없이 소설 속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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